붓다의 가르침

[붓다의가르침] 6. 거룩한 진리, 팔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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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팔정도
작성일12-09-26 00:00 조회2,16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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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세가지 배움과 여덟가지 성스러운 길



www.sunwoo.or.kr/윌폴라 라훌라 原著, 전재성 譯著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은 네번째의 거룩한 진리이다. 이 길은 두가지 극단을 피하기 때문에 중도라고 알려져 있다. 하나의 극단은 쾌락주의를 통해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의 극단은 고행주의를 통해서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다. 붓다는 이와 같이 말했다.

[붓다] "수행승들이여, 출가자는 두가지 극단을 가까이해서는 안된다. 무엇이 두 가지 인가? 하나는 감각적 쾌락에 관해 탐착하는 것을 일삼은 것이니 저열하고 비속하고 범부의 소행으로 성현의 법이 아니며 무익한 것이다. 다른 하나는 스스로 괴롭힘을 일삼는 것이니 괴로운 것이며 성현의 법이 아닌 것으로 무익한 것이다."

이러한 두 극단이 쓸데가 없다는 사실을 안 붓다는 이 두 극단적인 수행을 버리고 중도의 길을 발견했다.

[붓다] "수행승들이여, 여래는 이 두가지 극단을 떠나 중도를 깨달았다. 이것은 눈이 생기게 하고 지혜가 생기게 하며 고요함, 탁월한 앎, 올바른 깨달음, 열반으로 이끈다. 이 중도는 여덟가지의 범주로 구성되었기 때문에 여덟가지의 성스러운 길(八聖道)이라고 불린다.



1. 올바른 견해 (正見,sammaditthi)
2. 올바른 사유 (正思惟,sammasankappo)
3. 올바른 언어 (正語,sammavaca)
4. 올바른 행위 (正行,sammakammanto)
5. 올바른 생활 (正命,sammaajivo)
6. 올바른 정진 (正精進,sammavayamo)
7. 올바른 새김 (正念,sammasati)
8. 올바른 집중 (正定,sammasamadhi)


실제로 붓다가 45년간 설한 모든 가르침은 여러 가지 형태로 이 여덟가지의 성스러운 길을 설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붓다는 이해하고 따르는 능력과 수행의 정도에 따라 여러 사람에게 다양한 방법으로 이 여덟가지 성스러운 길을 설했다. 따라서 불경에 흩어져 있는 수천이 넘는 법문은 모두 여기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위의 여덟가지 수행은 순서대로 하나를 수행하고 나서 다음 것을 반드시 수행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붓다가 위와 같은 순서를 밝혀 경전의 어느 곳에서나 어김없이 설법을 했다. 물론 각 개인의 능력에 따라 다소간 동시적으로 수행될 수도 있는 것이다. 여덟가지는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으로 각각의 수행은 다른 것의 수행을 돕는다.

이 여덟가지 수행은 불교에서 세가지 배움(三學)을 닦기 위한 것이다. 이 여덟가지의 각 요소들은 일반적으로 세 가지의 순서적 다발로 구분된다.



1. 계행의 다발(戒蘊,silakkhandha) : 올바른 언어, 올바른 행위, 올바른 생활
2. 집중의 다발(定蘊,samadhikkhandha) : 올바른 정진, 올바른 새김, 올바른 집중
3. 지혜의 다발(慧蘊,pannakkhandha) : 올바른 견해, 올바른 사유


그러나 이렇게 분류하면 계행 -> 집중 -> 지혜의 세가지 배움의 계기가 여덟가지 수행의 순서와 들어맞지 않게 되는데 그것이 우리에게 혼란을 불러일으킨다.

지혜는 올바른 견해와 올바른 의도를 수반하는 세가지 배움의 최종단계지만 올바른 견해와 올바른 의도는 예상 밖으로 경전상에 팔정도의 최초의 두 단계를 구성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여덟가지 수행의 순서는 부주의한 실수의 결과가 아니라 중요한 논리적 숙고에 의한 배려였다. 붓다는 마지막 설법에서 반복해서 이러한 세가지 배움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붓다] "손으로 손을, 발로 발을 씻는 것처럼 지혜는 계행을 통해 씻겨지고 계행을 지혜를 통해 씻겨진다. 계행이 있는 곳에 지혜가 있고 지혜가 있는 곳에 계행이 있다."

따라서 지혜를 구성하는 올바른 견해와 올바른 사유가 있는데 그것이 세속적인 올바른 견해나 올바른 사유가 되면 여덟가지 수행의 출발점이 되고 출세간적인 것이 되면 궁극적인 지혜에 해당하게 된다. 올바른 견해는 출발이자 종착이므로 여덟가지 성스러운 길은 직선의 길이라기보다는 수레바퀴와 같다.

윤리적인 규범인 계행은 불타의 가르침에 기반을 둔 모든 생명에 대한 보편적인 사랑과 자비라는 위대한 개념위에 세워진 것이다. 따라서 불타의 가르침에 기반을 두었다는 것은 올바른 견해에 해당하고 보편적인 사랑과 자비는 올바른 사유에 해당한다.

학자들이 불교에 관해 논의할 때에, 붓다의 가르침 가운데 이러한 위대한 이념을 잃어버리고, 철학적이고 형이상학적인 메마른 측면으로 빠져버리는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붓다는 많은 사람의 이익을 위해서, 많은 사람의 행복을 위해서 세상사람들에 대한 자비로 가르침을 베풀었다.

부처님의 가르침에 의하면 완전한 사람이 되려면 두가지 측면, 곧 한편으로는 자비와 또한 한편으로는 지혜를 갖추어야 한다. 여기서 자비는 정서적인 측면에서의 사랑, 동정, 친절, 인내와 같은 거룩한 성품인데 지혜는 정신의 지적인 능력을 나타낸다. 사람이 지적인 측면을 무시하고 정서적인 측면만 개발하면 그는 좋은 마음을 지닌 바보가 되어버린다. 반면에 정서적인 측면을 무시하고 지적인 측면만 개발하면 그는 냉혹한 지성이 되어버린다.

인간이 완전하게 되기 위해서는 지혜와 자비를 동시에 개발해야 한다. 그것이 불교적인 삶의 목표이다. 그 속에 지혜와 자비는 불가분리하게 연결되어 있다. 팔정도의 출발인 올바른 견해와 올바른 사유가 곧 지혜와 자비인데 이것은 모든 여덟가지 성스러운 수행에서 수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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