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다의 가르침

[붓다의가르침] 5. 괴로움의 소멸의 거룩한 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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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팔정도
작성일12-09-26 00:00 조회2,06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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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열반은 긍정도 부정도 아니다



www.sunwoo.or.kr/윌폴라 라훌라 原著, 전재성 譯著



열반은 이와 같이 부정적인 표현으로 사용되기 때문에, 열반은 부정적이고 자아포기적이라는 그릇된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이 많다. 열반은 분명히 자아부정이 아니다. 왜냐하면 부정할 자아를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조금이라도 부정적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환상이나 그릇된 자아에 대한 부정적인 것이다.

열반을 두고 부정적이나 긍정적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틀린 것이다. 부정이나 긍정이라고 하는 개념은 상대적이며 이원성의 영역 내부에 있는 것이다. 이러한 말들은 이원성과 상대성을 넘어서 있는 열반이라는 절대적 진리에 적용될 수 없다.

부정적인 말이 반드시 부정적인 상태를 지시하는 것은 아니다. 건강에 대한 빠알리어나 범어는 아로기야(arogya,無病)인데, 그것은 문법적으로 병이 없음 을 뜻하는 부정적인 용어이다. 그러나 아로기야는 부정적인 상태를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

부정적인 가치에 대한 부정이 아닌 것으로 열반의 동의어로 가장 잘 알려진 말은 해탈 이라는 말이다. 어느 누구도 해탈이 부정적이라고 말할 수 없다. 물론 이 해탈이라는 말도 부정적인 측면을 지니고 있다. 해탈은 언제나 방해가 되고 악하고 부정적인 어떤 것으로부터의 해방이다. 그러나 해탈은 부정적인 상태가 아니다. 열반, 해탈, 절대적인 자유는 모든 악에서 벗어나는 것이며,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에서 벗어나는 것이며, 모든 이원성과 상대성, 시간 공간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맛지마 니까야]에는 절대적인 진리로서의 열반의 개념이 나와 있다. 이러한 중요한 이야기를 붓다는 옹기장이의 움막에서 현명하고 성실해 보이는, 이미 언급한 바 있는 뿟꾸싸띠에게 설했다. 경전에서 이와 관련된 부분의 골자는 다음과 같다. 사람은 여섯가지 요소, 곧 땅, 물, 불, 바람, 공간과 의식(地水火風空識)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것들을 분석해보면 내것 나 자아 라는 것은 발견할 수 없다.

사람은 어떻게 의식이 일어나고 사라지는지, 어떻게 기쁘고 불쾌하고, 기쁘지도 불쾌하지도 않은 느낌이 일어나고 사라지는지 알 수 있다. 이러한 느낌을 알아채더라도 그의 마음이 초연하게 되면, 그는 자기의 내부에서 평정심(捨心)을 발견한다. 그러면 그는 어떤 최고의 정신적인 상태의 성취로 향할 수 있어, 순수한 평정심을 오랫동안 지속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때 그는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

[붓다] "만약 내가 공간이 무한한 경지에다가 순수하고 청정한 평정심을 집중해서 마음을 닦아 그러한 상태에 순응시키면 그것도 바로 조건지어진 것이다. 만약 내가 의식이 무한한 경지에다가 순수하고 청정한 평정심을 집중해서 마음을 닦아 그러한 상태에 순응시키면 그것도 바로 조건지어진 것이다. 만약 내가 아무것도 없는 경지에다가 순수하고 청정한 평정심을 집중해서 마음을 닦아 그러한 상태에 순응시키면 그것도 바로 조건지어진 것이다. 만약 내가 지각하지도 않고 지각하지 않는 것도 아닌 경지에다가 순수하고 청정한 평정심을 집중해서 마음을 닦아 그러한 상태에 순응시키면 그것도 바로 조건지어진 것이다."

그런데 그는 유와 무를 정신적으로 창조하려고 하거나 의도하지 않는다. 그가 유와 무를 시설하거나 의도하지 않기 때문에, 그는 세상의 아무 것에도 집착하지 않는다. 아무 것에도 집착하지 않고 열망하지 않기 때문에 자기 스스로의 완전한 열반에 들어 완전한 평온에 머문다. 그는 "다시 태어남은 종식되었고 청정한 삶은 이루어졌다. 해야할 일은 해 마쳤고 더 이상 윤회하지 않는다." 라고 안다.

그는 즐겁거나 괴롭거나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것을 체험했을 때에 그것들은 무상하여 자신을 속박시키지 못하며 감정을 자극하지 못한다는 것을 안다. 그 느낌이 어떻든지 간에 그는 속박을 여윈 것을 체험한다. 모든 이러한 느낌들은 기름이나 심지가 다하면 꺼지는 램프의 불꽃처럼, 육신의 해체와 함께 진정된다는 것을 안다.

[붓다] "수행승이여, 이러한 사람은 최상의 지혜를 성취한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괴로움의 소멸에 대한 앎은 가장 거룩한 지혜이기 때문이다. 진리에 기반을 둔 이러한 해탈은 흔들리지 않는다. 수행승이여, 허망한 것은 거짓이고, 진실한 것은 열반이고 진리이다. 그러므로 수행승이여, 이러한 사람은 최상의 지혜를 성취한 것이다. 왜냐하면 진실한 것이 열반이라는 것은 곧 최상의 거룩한 진리이기 때문이다."

어느 곳에서든지 붓다는 열반을 설명할 때에 "수행승들이여, 그대들에게 나는 진리와 진리에 이르는 길을 가르칠 것이다." 고 말했다. 여기서 진리는 명확하게 열반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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