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다의 가르침

[붓다의가르침] 8. 불교와 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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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팔정도
작성일12-09-26 00:00 조회2,36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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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명상의 실제적 측면



www.sunwoo.or.kr/윌폴라 라훌라 原著, 전재성 譯著



이와 같이 광범위한 주제를 여기서 다 다루기는 불가능하므로 불교의 정신수행의 실제적인 측면을 간결하게 서술해 보고자 한다. 명상 곧 정신수행에 대한 붓다의 가르침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경을 암송한다는 의미의 [새김의 토대경(念處經,satipatthanasutta)]이다. 이것은 경전을 암송하는 것인데 전통적으로 너무 숭상된 나머지 질뿐만 아니라 재가 신자의 가정에서도 가족들이 둘러앉아 아주 경건하게 귀를 기울이는 가운데 행해진다. 죽어 가는 사람의 영혼을 마지막으로 순화시키기 위해서도 경전을 암송한다.

붓다의 가르침 속에 주어져 있는 명상법은 실생활과 단절된 것도 아니고 실생활에서 도피하고자 하는 것도 아니다. 그와는 반대로 우리 일상생활의 슬픔과 기쁨, 말과 생각, 도덕적, 지적인 일과 모두 관계되는 것이다.

이러한 명상과정은 네가지로 분류되고 있다. 첫째는 몸 즉 신체에 관한 것이고, 둘째는 감정이나 느낌등의 감수에 관한 것이고, 셋째는 마음에 관한 것이고, 넷째는 사물이나 사물의 원리나 도덕적 지적인 문제인 법에 관한 것이다. 어떤 형태의 명상이든 간에 근본적인 것은 유념, 알아차림을 포함하는 새김(念,sati-기억이라는 일차적 의미와 알아차림, 주의깊음이라는 이착적 의미가 있다)과 주의를 기울이는 관찰(隨觀,anupassana)이라는 점을 명심해야한다.

신체에 관련된 명상 가운데 가장 잘 알려진 일반적 실제적인 명상의 예로, 호흡새김(安般念,anapanasati)을 들 수 있다. 경전에서 지시하는 특별히 한정된 자세를 취하는 것은 이 호흡새김이다. 다른 명상에서는 앉거나 서거나 누워서나 편한 대로하면 된다. 숨쉬는 것을 헤아리려면 경전에 있는 것처럼 바로 앉아서 몸을 똑바로 세우고 정신을 바싹 가다듬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자세는 어느 사람에게나 쉬운 것은 아니므로 발을 포개어 앉는 것이 어려우면 의자에 앉아서 몸을 똑바로 하고 정신을 가다듬고 있어도 무방하다. 명상하는 사람은 몸을 똑바로 하고 앉되 몸이 굳어져서는 안된다. 손을 편안히 자신의 무릎에 놓는다. 이렇게 앉아서 눈을 감거나 코를 주시하거나 편안한 대로해도 좋을 것이다.

사람은 언제나 호흡을 하고 있지만 그것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으며 잠시도 숨을 쉬는 것에 정신을 집중하지 못한다. 이제는 오로지 여기에만 정신을 집중하자. 평소와 같이 긴장을 풀고 숨을 쉬어라. 숨을 마시고 내쉬는데 온 정신을 기울이자. 그대의 마음은 호흡을 주시하고 관찰하도록 하라. 숨을 들이쉴 때는 어떤 때는 깊이 들이 쉬고 어떤 때에는 그렇지 않은데, 이런 점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정상적으로 자연스럽게 숨을 쉬어라. 깊은숨을 쉴 때에 그것은 깊은숨이라고 알아차리기만 하면 된다. 온 정신을 숨쉬기에만 열중하여 숨의 움직임, 변화를 알 수 있어야 한다. 다른 모든 것, 주위, 주변을 잊어라. 눈을 뜨지도 말며 아무 것도 보지 말라. 이렇게 5분 내지 10분간씩 해 보라.

처음에는 숨 쉬는데 온 정신을 기울이는 것이 무척 어려울 것이며 또한 그때에 정신이 잘 흐트러지는데 놀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오래가지 않는다. 온갖 생각을 하기 시작하고, 밖에서 나는 잡음들이 귀에 들리면 당신은 정신이 혼란되고 흐트러진다. 그렇게 되면 아마도 당황하고 실망하겠지만, 이것을 아침저녁으로 매일 2회, 한번에 5내지 10분간 연습을 계속한다면 점차로 숨쉬는 것에 정신이 집중될 것이다.

얼마간의 기간이 지나가면 정신이 오로지 호흡에만 집중되고 가까이 들리는 소리도 듣지 못하고, 어느 외부 세계도 당신에게 존재하지 않는 듯한 기분이 들자마자 두 번째 마음의 혼란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이 때에 경험하는 짧은 순간은 기쁨과 행복, 평온이 가득 찬 것으로 당신에게 놀라운 경험이 되어 그 순간을 지속하고자 할 것이나 그렇게 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이러한 훈련을 규칙적으로 계속 연습하면 점점 오랜 시간동안 이러한 경험을 지속시킬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이때가 자신을 숨쉬기에 완전히 몰입시키는 순간이다. 자신을 의식하는 한 무엇이든 간에 그것에 결코 정신을 집중할 수 없는 것이다. 호흡에 정신을 집중한다는 것은 제일 간단하고 쉬운 수련의 하나인데, 매우 신비스러운 경지에 이르게 하는 집중력을 계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더욱이 정신을 집중한다는 것은 열반의 체득이나 사물의 본질에 대한 이해와 통찰에 꼭 필요한 일이다. 뿐만 아니라 이렇게 호흡에 정신을 집중함으로써 즉각적인 결과, 곧 신체의 건강, 휴식, 숙면, 일상 업무에서의 능률 등이 나타난다. 또한 신경이 날카롭거나 흥분되어 있을 때에도 잠시 이런 수행을 하면 마치 충분히 휴식을 취한 후 원기 왕성한 것처럼 마음이 평온하고 청정해짐을 느낄 것이다.

정신수행에서 또 다른 중요한 실용적인 형태는 사적 공적인 생활에서 그날 그날의 진부한 일을 하는 동안 육체적으로나 언어적으로나 어떠한 행위를 하던 간에 그것을 의식하고 유념하는 것이다. 걷거나 앉거나 눕거나 자거나, 손발을 펴고 굽히거나 주위를 둘러본다던가 옷을 입는다던가, 말을 하거나 침묵을 지키거나, 먹고 마시고 대소변을 볼 때까지도 그 순간 당신이 하고 있는 행동을 철저히 유의하고 마음을 집중시켜야 한다.

다시 말해서 현재의 순간, 현재의 행동 속에 살아야 한다. 그렇다고 과거와 미래에 대하여 하나도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와는 반대로 과거나 미래와 관련된 시간이나 장소를 현재의 순간, 현재의 행동에 연관시켜 생각하면 된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현재의 이 순간의 행위 속에 살고 있지 않다. 그들은 과거나 미래에 살고 있는 것이다. 지금 여기서 그들이 무엇인가 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도 쓸데없는 생각, 망상이나 걱정거리, 또는 과거의 추억이나 미래에 대한 열망과 사색 속에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현재의 행위 속에 사는 것도 아니며, 현재의 행위를 향유하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불행해지고 현재의 순간, 현재의 일에 불만족해진다. 따라서 당연히 그들이 하는 것처럼 보이는 행동에 전념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아주 흔한 광경이지만 가끔 식당에서 식사를 하면서 책을 읽는 사람을 본다. 그런 사람을 보면 식사할 시간조차 없이 바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또 그가 식사를 하는지 독서를 하는지 궁굼하게 여기게 된다. 어떤 사람은 이 사람이 둘 다를 하고 있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실상은 그 사람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아무 것도 향유하지 않는 것이다. 그는 마음이 긴장되고 혼란스러워 자기가 하고 있는 것을 바로 그때에 즐기지 못하고 현재의 순간을 놓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무의식적으로 어리석지만 생활에서 벗어나려고 애쓰는 것이다.

그렇다고 친구와 함께 점심이나 저녁을 하면서 이야기하지 말라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애써 보아도 삶은 도피할 수가 없는 것이다. 동굴에서 살든 마을에서 살든 삶과 대면하지 않으면 안되고 또 삶을 영위하지 않으면 안된다. 참된 삶은 현재의 순간 속에 사는 것이다. 사라져버린 과거에의 추억도 아니요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에 대한 꿈도 아니다. 현재의 순간을 사는 사람은 참된 삶을 영위하는 제일 행복한 사람이다.

[하늘사람] "한적한 숲 속에서 살면서 고요하고 청정한 수행자들은 하루 한 끼만 들면서도 어떻게 얼굴빛이 맑고 깨끗합니까?"
하늘사람의 질문을 받고 붓다는 이와 같이 말했다.
[붓다] "그들은 지나간 일을 슬퍼하지 않고 오지 않은 일에 애태우지 않으며 현재의 삶을 산다. 그러므로 그들의 얼굴빛은 맑고 깨끗하다. 오지 않은 일에 애태우며 지나간 일을 슬퍼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은 낫에 잘린 푸른 갈대처럼 그 때문에 시든다."

마음의 집중 또는 주의란, 내가 이것을 지금 하고 있다. 또는 내가 그것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거나 의식하라는 뜻이 아니라 그와는 오히려 정반대이다. 내가 이것을 하고 있다 고 생각하는 순간에는 자의식이 강하게 되어 그 행위 속에 살고 있지 않게 된다. 오히려 자기 존재 속에 빠지게 되어 자신의 노력을 그르치고 만다. 자신이 하는 일에 몰아 일체가 되어야 한다. 연사가 자의식이 강하게 되어 자신이 청중에게 말하고 있다 고 생각하면 그의 말은 혼란스러워지고 갈피를 잡을 수 없게 된다. 그러나 연사가 자기 말에 몰두하게 되면 그는 최상의 상태에서 유창하게 사물을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위대한 성취 -예술적, 정신적, 지적, 정신적- 는 그 성취를 이룩한 사람들이 자신의 행동에 완전히 빠져들었을 때, 자신을 망각하게 되는 순간, 곧 자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이루어진다. 붓다가 가르침으로 보여준 행위에 관한 정신집중이나 새김의 방법은 시방(十方)에 살고 현재의 행동 속에 사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참선의 수행과도 통하는 것인데 주로 참선도 이러한 방법에 근거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명상법을 닦는데 마음의 집중을 계발하고 어떤 특별한 수행을 할 필요는 없다. 단지 자신이 하는 일이 무엇이든지 마음을 집중하고 주의를 기울이기만 하면 된다. 이 각별한 명상에 시간을 촌각이라도 낭비할 필요는 없다. 다시 말해서 일상생활의 모든 활동에 대하여 밤낮으로 항상 마음의 집중과 주의력을 기울이기만 하면 된다. 위에서 논의한 것은 모두 신체와 관계된 것이다.

그리고 인간의 감수 - 그것이 행복한 것이건 불행한 것이건 - 에 관해 명상하는 방법이 있다. 한가지 예를 들어보자. 인간은 불행하고 슬프다는 감수를 경험한다. 이런 상태에서 그는 침울하고 답답하다는 것을 경험한다. 어떤 경우에는 왜 이렇게 불행하다는 기분이 드는지 명확히 모를 때가 있다. 무엇보다도 먼저 불행하다고 느끼는 불행, 걱정이 된다고 느끼는 근심에 젖지 않는 것을 배워야 한다. 이 불행한 느낌이 어떻게 일어나고 있는지 왜 일어나고 있는지 또 어떻게 없어지고 그치게 되는가를 면밀히 살펴보라.

과학자가 어떤 사물을 관찰할 때처럼 모든 주관을 배격하고 마치 그것을 외부에서 관찰하듯이 주의 깊게 관찰하라. 다시 말해서 주관적인 감수나 느낌으로서가 아니라 객관적인 응시를 통해 관찰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자아 의 거짓된 관념을 잊어야한다. 불행하다고 느끼는 것의 본질, 그것의 발생, 소멸의 과정을 살펴봄으로서 마음은 그 감수에 대하여 냉정을 찾게 되고 분리되어 자유로와 진다. 이것은 모든 감수나 느낌에 대하여도 마찬가지이다.

다음은 인간의 마음에 관한 명상법을 논의해보자. 마음이 열정적이거나 초연해 있을 때에, 또는 마음이 증오, 악의, 질투에 사로잡히거나 사랑과 연민의 정으로 가득 차 있을 때에, 또는 마음이 현혹당해 있거나 순수하고 올바른 이해심을 지키고 있을 때에 어느 때든지 그 사실을 철저히 알아차리고 있어야 한다. 우리는 자신의 마음을 비추어보는 것을 두려워하거나 부끄럽게 여기는 일이 아주 흔하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래서 우리 인간은 그것을 회피하기를 즐겨한다. 거울에 얼굴을 비추어보듯이 담대하고 진실하게 자신의 마음을 비추어 보아야한다.

옳고 그름과 선과 악 사이에 비판하거나 심판하거나 차별하는 태도가 개입되어서는 안된다. 그저 관찰하고 지켜보고 살펴보는 것만이 있을 뿐이다. 여러분은 심판관이 아니라 과학자이다. 자신의 마음을 관찰하고 그 참된 본질을 명확하게 볼 때에, 비로소 감정, 정서, 흥분 등을 조절하게 된다. 이렇게 해서 마음이 홀가분해지면 사물의 본질을 보게 되는 것이다.

예를 하나 들어 보자. 가령 당신이 화가 나서 분노, 악의, 증오에 사로잡혀 있다고 하자. 화가 나 있는 사람은 자신이 노해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마음을 쓰지 않는다는 사실은 이상하고 역설적으로 보인다. 그가 자기 마음이 화가 나있는 것을 알고 주의하여 자신의 성냄을 알아차리게 되었을 때에, 비로소 부끄럽고 수치스럽게 생각되는 것이다. 여러분은 이 성냄의 본질, 그 발생과 소멸의 과정을 살펴보아야 한다. 또한 알아두어야 할 것은 나는 화가 나 있다 또는 나는 분노에 차 있다 고 생각하지 말고 단지 화가 나 있거나 분노에 차있는 마음의 상태만 알아차리고 주의하기만 하면 된다. 곧 화난 마음을 객관적으로 알아차리기만 하면 된다. 이러한 태도는 모든 정서, 감정, 마음의 상태에 적용되어야 한다.

그리고 끝으로 내적, 외적인 사물에 대한 관찰이나 도덕적 정신적, 지적인 문제에 관한 명상법이 있다. 여기에는 우리가 하는 공부, 독서, 논의, 대화, 토론 등의 모든 것이 포함된다. 이 책 속에 논의된 모든 문제나 다섯가지 존재의 다발(오온)이나 연기나 무아의 문제를 심사숙고 해보는 것도 이 명상의 한 형태에 들어간다. 여기에는 특히 40가지의 명상의 주제들이 있는데 이러한 주제들은 연기법에서 모든 조건지어지고 속박된 것의 소멸로 이끌어 마침내 열반으로 회향하는 것들인데 이미 여덟가지 성스러운 길에서 상세히 언급했으므로 생략한다. 단지 여기서는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일곱가지 깨달음 고리(七覺支)와 네가지 청정한 삶(四梵住)에 대하여 다시 설명해 본다.

1. 새김의 깨달음 고리 : 앞에서 논의한 바와 같이 육체적, 정신적인 모든 행위와 움직임을 세밀히 관찰하는 것을 말한다. (念, sati)

2. 탐구의 깨달음 고리 : 교리의 여러 가지 문제에 관하여 조사하고 연구하는 것을 말한다. 여기에는 종교적, 윤리적, 철학적 연구, 독서, 탐구, 논의, 대화를 비롯해서 교리문제에 관한 강연에 참가하는 것까지 포함한다. (擇法, dhammavicaya)

3. 정진의 깨달음 고리 : 끝까지 결의를 다지고 밀고 나아가는 것을 말한다. (精進, viriya)

4. 희열의 깨달음 고리 : 마음이 염세적이고 우울한 것과는 정반대로 경이와 희열에 넘친 상태를 지향한다. (喜, piti)

5. 안온의 깨달음 고리 : 육체와 정신이 휴식을 취하는 상태로 육체적 정신적인 괴로움의 소멸을 지향한다. (輕安, passaddhi)

6. 집중의 깨달음 고리 : 정신집중이 되어 삼매에 든 상태를 지향한다. (定, samadhi)

7. 평정의 깨달음 고리 : 인생의 파란곡절에서 침착한 마음을 유지하는 것으로 근심이 없고 평온한 마음의 상태를 말한다. (捨, upekkha)

이와 같은 능력을 계발하려면 제일 중요한 것은 진실한 염원, 의지, 취향 등이다. 이러한 깨달음의 요소를 계발하는데 필요한 물질적 정신적인 여건들은 경전에서 따로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이미 여덟가지 성스러운 길 가운데 올바른 새김에서 더욱 상세히 거론했지만 불교적인 명상에서 특히 중요한 네가지 청정한 삶이란 다음과 같다.

1. 자애로운 삶 : 어머니가 외동아들을 사랑하는 것처럼 어떤 차별도 없이 중생을 사랑하는 보편적이며 무한한 사랑을 실천한다. (慈, metta)

2. 동정어린 삶 : 근심과 번뇌로 괴로워하는 모든 중생에 대한 연민의 태도를 갖는다. (悲, karuna)

3. 희열에 찬 삶 : 다른 사람의 성공, 복지, 행복을 축하하고 그것에 공감한다. (喜, mudita)

4. 평정한 삶 : 인생의 모든 파란과 곡절에서 침착과 평정을 유지한다. (捨, upekk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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