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경전입문] 44. 자애로운 마음을 발판으로 (慈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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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도 여느 때처럼 불타가 그 제자들과 함께 사밧티(舍衛城)에 머물던 때의 일이었다. 불타가 대단히 훌륭한 비유를 가지고 자비(慈悲)의 마음을 닦아야 하는 것에 대하여 제자들에게 설한 적이 있었다.
“비구들이여, 예를 들어 여기에 잘 벼려진 한 자루의 칼이 있다고 하자. 그런데 거기에 한 사람이 나서서 ‘자, 내가 이 칼날을 구부려서 엿가락처럼 비틀어 보겠소.’라고 말했다고 하자. 대체 그가 그런 일을 할 수 있겠는가.”
“대덕이시여, 도저히 그럴 수 없습니다.”
“왜 그럴까.”
“대덕이시여, 벼려진 칼이라 할지라도 구부려 꺾거나 비틀어 버릴 수는 있겠지만 그렇게 하려다가는 오히려 칼에 베어 상처를 입고 고통만 당할 뿐이기 때문입니다.”
불타는 제자들의 그런 대답을 기다려서 자비의 마음이 지니는 덕(德)을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비구들이여, 그와 마찬가지로 만일 그대들이 자비의 마음을 닦고 그것을 자주 반복하여 실천함으로써 완전히 몸에 익혀 버린다면 그것을 발판으로 서서 안주할 수 있게 되어 아무런 것도 두려운 바가 없게 될 것이다. 악한 귀신이 나타나서 그대들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으려 할지라도 결코 생각처럼 할 수 없을 것이다.”
이것은 자비의 마음이 손쉬운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기이한 비유라고 생각될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잘 생각해 보면 자애로운 마음이라고 하는 것은 결코 손쉬운 것이 아니다. 자애로운 마음의 토대가 되는 것은 두말할 것 없이 인간의 본성 속에 있는 것이다. 내 자식이 사랑스럽다. 내 부모가 소중하다. 형제가 어려운 처지에 있으면 나 자신도 슬퍼서 눈물이 흐른다. 바로 이 사랑하고 측은해 하는 마음을 널리 전 인류에게 그리고 나아가 목숨이 있는 모든 것에게 넓혀 가는 그것이 자비인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확대해 나가고자 하면 여러 가지 번뇌가 그것을 방해한다. 이기심이 그렇고, 탐욕의 마음이 그렇다. 노여움이나 악의도 그것을 막는다. 파벌 심리도 그것을 막고 편협한 애국심도 그것을 막는다. 이 방해하는 것들을 하나씩 소멸하면서 스스로를 연마해 나아가야 비로소 끝없는 자비가 드러난다. 이런 사실을 깊이 되새길 때 이 비유가 의미하는 바에 좀더 가까워질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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