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에서 영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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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2-09-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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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에서 영원으로 가는 대자유인의 길을 이끌어준 성철 큰스님의 이야기!
불필 스님의 회고록『영원에서 영원으로』. 성철스님 탄생 100주년을 맞아 딸이며 제자인 저자가 처음 밝히는 큰스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지중한 인연으로 딸로 태어났지만 단 한 번도 아버지라 불러보지 못했고, 열여덟 살에 안정사 천제굴에서 뵌 순간부터 저자에겐 아버지가 아닌 스승이었던 성철스님에게서 받은 가르침을 오롯이 전하고 있다. 성철스님의 가족사에서 인간의 한계를 넘나드는 선지식들의 수행에 대해 이야기하며 도의 길뿐 아니라 어떻게 인생을 살아야 하는지 성철스님이 저자에게 일깨워준 지혜를 들려준다. 제자들을 뜨겁게 품은 은사 인홍스님부터 온 대중들을 감화시킨 큰스님들의 법거량까지 담아 한국불교 100년의 역사와 치열하게 수행하는 스님들의 아름다운 모습까지 만나볼 수 있도록 했다.
갑작스러운 언니의 죽음 이후 사람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라는 생각에 빠져 있던 중 아버지 성철스님으로부터 영원한 행복의 길에 대한 말씀을 듣고 출가를 결심한 저자는 이 책에서 아버지 성철스님과 가족들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청량사 시절의 초발심, 금강굴에서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더불어 성철스님에게 가장 가까우면서도 가장 멀리 있어야 하는 존재였던 저자가 개인적으로 소장해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던 성철스님의 법문과 편지, 사진 자료들, 과거에 가필된 형태로 발표되었던 친필 법문 노트를 원문 그대로 담아 불교 공부를 하는 지침서로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 저자 : 불필 스님
저자 불필(不必)스님은 1937년 지리산 자락 아름다운 경호강 굽이에 안겨 있는 묵곡리에서 성철스님의 딸로 태어났다. 봄이면 뒷동산에 올라가 진달래꽃을 꺾고, 여름이면 맑은 개울에서 물장난을 치고, 가을이면 밤나무 숲에 들어가 친구들과 알밤을 줍는 천진무구한 유년 시절을 보내다가, 갑작스럽게 언니의 죽음을 맞았다. 이후 ‘사람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라는 생각에 빠져 있던 중 아버지 성철스님으로부터 영원한 행복의 길에 대한 말씀을 듣고 출가를 결심한다. 1956 진주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성철스님이 직접 쓰신 법문 노트를 받아 수행의 지침서로 삼았다. 1957년 가지산 호랑이라 불리던 인홍스님을 은사로 석남사에서 출가하여, 자운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를 수지했다. 1961년 통도사 금강계단에서 비구니계를 수지하고, 석남사 심검당에서 100일 동안 눕지 않는 장좌불와를 한 끝에 3년 결사를 회향했다. 출가 이후 자유로운 운수납자(雲水衲子)로 해인사 청량사, 태백산 홍제사, 문경 대승사 윤필암, 묘적암, 해인사 국일암, 지리산 도솔암, 대원사, 오대산 지장암 등 제방선원을 다니며 공부했다. 1993년 성철스님께서 열반하신 후 지금까지 석남사 심검당에서 수행 정진하고 있다.
* 내용 미리보기
영원에서 영원으로 가는 대자유인의 길을 이끌어주신 성철 큰스님.
나는 지중한 인연으로 큰스님의 딸로 태어났지만 단 한 번도 아버지라 불러보지 못했다. 그리고 열일곱 살에 안정사 천제굴에서 뵌 순간부터 큰스님은 내게 아버지가 아니라 스승일 뿐이었다. 그럼에도 주변 분들은 나를 큰스님의 딸로서만 바라보는 듯하다.
나는 큰스님에게 가장 가까우면서도 가장 멀리 있어야 하는 존재였다. 그렇기에 큰스님 영결식과 연화대 다비식에도 참석하지 못했고, 다비식 날 늦은 오후에야 금강굴 위 다비장에서 사그라지는 불꽃을 바라보며 절을 올릴 수 있었다. 과거, 현재, 미래를 다해 다시 만나 뵐 것을 약속하는 아홉 번의 절이었다.
-<책을 펴내며 : 어디로 가고 있는가> 중에서
묘관음사 입구에 도착하니 어느덧 해질 무렵이었다. 바다가 보이는 산기슭을 따라 한참 올라갔더니 우둘두둘 무섭게 생긴 스님이 보였다. 상상 속에 그려왔던 아버지의 모습은 아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아버지의 도반인 향곡스님이었다. ...... 아버지 큰스님은 아마 우리가 올 것을 알고 어디론가 피해 계셨던 것 같다. 조금 있다가 향곡스님과 함께 다 떨어진 누더기를 걸친, 눈이 부리부리한 스님 한 분이 나타났다. 마음속으로 ‘저 분인가?’ 하는 순간, 그분이 소리를 크게 질렀다.
“가라, 가!”
그 말을 듣는 순간 정말 한 치의 미련도 없이 삼촌의 손을 꼭 잡고 돌아서버렸다.
“집에 가자, 삼촌!”
-<아버지 성철스님을 처음 만나다> 중에서
한번은 큰스님이 계신 범어사 원효암으로 찾아갔더니 동화사 금당선원에 있다가 은혜사, 운부암을 거쳐 금강산으로 갔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큰스님이 금강산 마하연에서 정진했던 해가 1940년이었으니 출가한 지 4년쯤 지났을 때였다. 할머니가 천리 길을 물어물어 온갖 고생을 감내하면서 금강산 마하연까지 찾아갔는데 큰스님은 “이렇게 먼 길을 왜 오셨소!” 하고 고함부터 치며 냉대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할머니는 “아니, 난 니를 보러 오지 않았다. 하도 금강산이 좋다고 해서 금강산 구경하러 왔제”라고 했다. 이 대답에 큰스님도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셨다. 그 상황에서 도대체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겠는가. 요즘처럼 교통편이 좋은 때도 아닌 일제강점기의 어려운 시절, 그 먼 길을 찾아온 어머니와 그분을 마주한 아들의 기막힌 심정은 당사자들만이 알 것이다.
-<할머니의 성스러운 모정> 중에서
당시 성전암에는 행자 세 명이 큰스님을 모시고 있었는데, 그중 한 사람이었던 동업행자(천제스님)에게 들은 이야기다.
“인기척이 나서 밖으로 나가보니 웬 젊은 부인이 스님 뵙기를 청해요. ‘큰스님께선 지금 아무도 안 만나주시니 그냥 돌아가주십시오’라고 했는데도 스님을 만나야 한다는 말만 반복해요. 해질 무렵이 되자 그분이 어딜 갔는지 사라졌어요. 당연히 돌아갔나 보다 하고 저녁 공양을 마쳤죠. 공양이 끝나고 큰스님이 시자실로 오셔서 막 말씀을 하시려고 하는데, 우당탕 문이 부서지는 소리가 나더니 낮에 보았던 그분이 들이닥치는 거예요.”
“스님, 내가 할 말이 있어 왔소!”
...... 어머니가 쫓겨날 것을 뻔히 알면서 큰스님을 찾아간 것은 ‘그렇게 도가 좋으면 혼자 가면 되지 왜 하나밖에 없는 딸까지 데려가느냐? 딸만이라도 돌려주면 이 세상 누구 못지않게 훌륭한 사람을 만들어볼 것이요’ 하고 담판을 짓고 싶어서였다. 그런데 말 한 마디 꺼내보지 못하고 쫓겨났고 말았으니, 빈 걸음으로 돌아오던 그 심정은 또 어떠했을까.
-<가슴에 묻은 어머니의 꿈> 중에서
지금 읽어봐도 큰스님의 법문은 명철하면서도 현대적인 언어로 쓰여 있어 귀에 쏙쏙 들어온다. 1950년대, 그러니까 큰스님의 연세 40대 중반에 작성하신 것인데 어쩌면 그렇게 내용이 일목요연하고, 문장 또한 군더더기 하나 없이 논리정연한지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
부처님께서 도를 깨치시고 처음으로 외치시되 “기이하고 기이하다. 모든 중생이 다, 항상 있어 없어지지 않는〔常住不滅〕 불성(佛性)을 가지고 있구나! 그것을 모르고 헛되이 헤매며 한없이 고생만 하니, 참으로 안타깝고 안타깝다”고 하셨다.
이 말씀이 허망한 우리 인간에게 영원불멸의 생명체가 있음을 선언한 첫 소식이다. 그리하여 암흑 속에 잠겼던 모든 생명이 영원한 구제의 길을 얻게 되었으니, 그 은혜를 무엇으로 갚을 수 있으랴. 억만 겁이 다하도록 예배드리며 공양 올리고 찬탄하자.
영원히 빛나는 이 생명체도, 도를 닦아 그 광명을 발하기 전에는 항상 어두움에 가리어서 전후가 캄캄하다. 그리하여 몸을 바꾸게 되면 전생(前生)일은 아주 잊어버리고 말아서, 참다운 생명이 연속하여 없어지지 않는 줄을 모른다.
-<큰스님께서 써주신 수행자 교과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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